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作品11【长篇小说】.d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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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토 이 태 준 1 여러 날째 강다지로 춥더니 오늘은 해질 무렵부터 싸락눈이나마 뿌린다. 들여다보는 얼굴까지 뜨겁던 억쇠 어미의 몸도 오늘은 한결 식었다. 숨소리도 편안해졌다. 어쩌면 한고비 넘기었으니 이쯤으로 돌리나 싶어 억쇠 아비는 안경알만한 유리쪽에 붙어 앉아 밖을 내다볼 경황도 생기었다. 광대뼈가 한편이 더 불거지어 이마까지 그편으로 찡기는 것이 제격인 억쇠 아비는 찡긴 이마를 문에 대고 작은 눈을 치떠 내다보나 함박눈은 되지 않고 그저 싸래기로 그것도 시원치 않게 뿌린다. 함박눈으로만 펑펑 쏟아져 준다면 억쇠 어미는 내일 아침쯤 툭툭 털고 일어날 것 같다. 그리고 안에서도 초산(初産)이라고 모두 걱정 중인 새아씨가 힘들이지 않고 순산할 것 같다. 역시 남의 집 하인의 자식이던 팔월이와 성례(成禮)나 째나 귀밑머리만 풀어 올려 데려오던 날이 함박눈이 탐스럽게 쏟아지던 날이었다. 그래 그런지 함박눈이 쏟아지는 것을 보면 늘 기뻤고 무슨 수가 생길 성싶었다. 억쇠 어미도 몸이 불덩이 같던 그제 어제 이틀 동안은 가슴을 쥐어뜯으며 헛소리처럼 눈, 눈 하고 눈을 찾았다. 어느 산꼭대기에라도 눈이 있기만 하다면 억쇠를 시켜 한 함지 담아다 그 물커질 것처럼 골매지 낀 눈에 시원히 보여라도 주고 싶었으나 송악산 위에도 아직 눈은 덮이지 않았다. 냉수나 얼음을 찾지 않고 눈을 찾는 것이 그도 스물열여덟 해 전 그 함박눈 쏟아지던 날을 잊지 않고 속 깊이 품어 온 듯하여 어서 일어나고 함박눈이나 쏟아지면 이런 것도 옛이야기처럼 하리라 마음먹었다. 바깥은 어느새 어두워 싸락눈 뿌리는 소리만 들린다. "아버지?" 어미의 이불자락 밑에 손을 넣었던 억쇠가 눈이 둥그래졌다. 어미는 손만 아니라 이불 속에 있는 발까지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왜 이렇게 차졌수?" "차다니?" 아비도 와 만져 보고는 다시 이마가 찌푸려진다. '이건 또 무슨 증센구?' 그 동안이 잠깐새 같았는데 바깥 날이 꼴깍 저문 것처럼 병인의 손발도 딴판이 되어 있었다. "여봐? 정신 좀 차리라구?" 몇 번 흔들어 보나 반나마 감긴 눈이나 반나마 벌어진 입도 아무 대꾸가 없이 숨소리만 도로 가빠지며 있었다. 억쇠더러 나가 방도 달굴 겸 물을 데워 오래서 병인의 발을 더운 물에 담가 놓고 주물러 본다. 발은 뒤축이 보름 지난 설떡 갈라지듯 했다. 겨울에는 이렇게 뒤축이 터지어 절름거리고, 여름이면 발가락 새가 짓물러 절름거리던, 평생을 편안한 걸음이 없던 발이었다. "아비 게 있니?" 문 밖에서 노마님의 목소리가 난다. 억쇠 아비는 후닥닥 일어서기부터 한다. 앉아서 대답이란 평생 해본 적이 없는 버릇이다. "네." "문 열지 말구."   그러나 병인의 머리맡에 외풍 풍기는 것쯤 가려 노마님 앞에 방 속에서 말대꾸를 할 수는 없다. "문 열면 안 된대두. 이 미욱스런 녀석아, 내 그런 꼴 보겠다니?" 하마터면 내어밀 뻔한 문고리를 섬쩍 놓으며 그제야 억쇠 아비는 노마님의 문 열지 말라는 뜻을 알았다. 노마님의 말씀대로 역시 저는 미욱한 놈이었다. "뭘 좀 입에 퍼넣어 보았니?" "넣는 대루 토하는걸입쇼." "몸은 그저 끓구?" "손발은 써―늘하게 식었사와요." "써―늘해?" "네, 그래 물을 덥혀다 발을 좀 씻겨 보드랬습죠." "엥이 배라먹을년 같으니……." 억쇠 아비는 억쇠 어미가 무슨 트집으로나 앓는 것처럼 노마님의 꾸지람이 지당한 듯, 들렸던 고개가 절로 수그러진다. "딴 무슨 증센 없구?" "아까 점심때 못 돼선뎁쇼." 하는데 억쇠 녀석이 아비를 꾹 찌른다. 그러나 아비는 주인 앞에 손톱만한 것이라도 기어서는 못 쓰는 줄 안다. "아까 뭐란 말이냐?" "한참 몸이 달었을 땐뎁쇼. 콧구멍으로 회가 한 마리 나왔사와요." "회충이?" "크진 않사와요." "배라먹을년 갖은 부정 다 떠는구나. 엥이…… 그래 그 게구 싸구 했다는 것서껀 어떡했느냐?" "마냄 말씀대루 그냥 뭉쳐 이 구석에 뒀사와요." "내가 내다 빨어두 괜찮다구 헐 때까지 방문 밖에 내놔선 안 된다." "네." "온 집안이 목욕재계허구 기다려야 헐 경사에 이게 도무지 무슨 부정이란 말이냐!" "다시 이를 말씀이와요!" "아무리 병이기루 고렇게 얌체없는 년은……." 억쇠 아비는 이마를 찡기며 손이 절로 뒤통수로 올라갔다. "게 억쇠 녀석두 있지?" "있사와요." "밤에 말이다, 밤으루 무슨 일이 있어두 말이다?" "네." "알어들었니? 무슨 변이 생기드라두 말이야?" "네." "울음 소리 아예 내선 안 되구." "……" "안으로 덥석 뛔들지 말구, 부엌 뒤루 와서 아비가 날 넌즈시 찾어라." "설마 무슨 일이 있을깝쇼, 횟밴가 본뎁쇼." "예끼 미욱헌 녀석…… 엥이 방자스러운 년……." 노마님은 혀를 몇 번이나 차면서 안으로 들어가는 모양이었다. 억쇠 아비도 횟배 아닌 것쯤은 모르지 않으나 마님들께서나 나릿님께서 걱정하는 것이면 어찌 되었든 덜어 드리려는 버릇에서였다. 아비는 다시 병인의 발치가래로 왔으나 억쇠는 일어섰던 자리에 그냥 삐죽 서 있었다. 노마님의 말을 듣고 보니 어미의 손발 식는 것이 심상치 않은 것 같았고 죽더라도 울음 소리 한마디 내어서는 안 된다는 말에 한 대 얻어 박힌 것처럼 콧등이 찌르르해진 것이다. 그까짓 어미 한두 번 아니게 남부끄러운 어미였었다. 이름도 사람 같지 않게 팔월에 낳았다고 '팔월이.' 누가 보는 데서나 안에서 '팔월이' 소리만 나면 그것이 어른이 부르든 아이가 부르든 '네에' 소리를 길게 빼면서 신 뒤축도 밟지 못하고 달려 들어가는 꼴. 같이 놀던 아이들이 저게 너희 엄마냐? 물으면 말문이 막히어 동무들이 찾아오는 것도 겁이 나던 어미. 얼른 죽어 없어지든지 제가 어서 커서 어디로고 달아나 버리기를 얼마나 바라 왔던가. 그런 어미 열 번 없어지기로 눈물은커녕 헛소리라도 곡(哭)을 하고 상제 노릇을 하랄까 보아 걱정일 것인데 정작 제 어미 제 계집이 죽더라도 울음 한마디 내어서는 안 된다는 분부엔 어린 속에도 다른 때, 열 번 꾸지람이나 열 번 얻어맞던 것보다 더 야속하게 저리었다. "저 새낀 앉아 에미 손이나 좀 못 주물러 준담?" "손발이나 주물른다구 낫는답디까?" "어떡허냐 그럼." 아비는 그 흔한 약 한 첩 못 써보는 것에나 계집이 죽더라도 곡성 한마디 내어선 안 된다는 분부에 아무런 불평도 노염도 없는 듯하였다. 택호(宅號)만은 그전대로 '윤판서댁'으로 불리어지는 이들의 주인은 조선이 망한 후 세도는 없어지고 씀씀이만 과해 가는 서울 살림에 쪼들리기만 하다가 대감마님 돌아가 삼년상을 치르고는 이 집의 전장(田庄)이 아직 반은 남아 있는 황해도로 낙향한 지 이미 사오 년 된다. 낙향이라야 황해도로는 나릿님(돌아간 윤판서의 아들)만이 소실을 데리고 가서 감농을 하고 있을 뿐 도련님(나릿님의 아들)의 학교 공부를 위해 정작 본살림은 중간 개성에다 차린 것이었다. 이 주인댁 개성살림 덕에 억쇠는 서울서처럼 잔심부름이 고되거나 아주 농토 옆에 있는 것처럼 거친 일에 부대끼지는 않는다. 도련님의 더운 점심 나르느라고 여러 해 학교 마당에 드나들어 어깨너멋글로 언문과 일본 '가나'는 제법이요, 한문 글자도 웬만한 편지 봉투쯤은 뜯어 보게 눈이 트였고 일이라야 앞뒤 뜰안 쓰레질뿐 잔심부름 한 가지도 없는 날도 있다. 도련님은 종일 학교에 가 있고 저희 아비는 추수 때면 한두 달씩 '가재울'이라는 황해도 시골댁에 가 있을 뿐 아니라 다른 때도 노상 개성과 가재울 사이에서 있게 된다. 개성집에는 낮에는 억쇠 하나가 사내일 경우가 많아 주인댁에서는 억쇠를 개나 한 마리 기르는 것처럼 번둥번둥 놀리고 먹이는 것이며 억쇠는 일은 없고 심심해서도 도련님이 보다 버린 것이면 책이든 신문이든 주워다 읽기도 한다. 일년 삼백육십일 하루같이 '배라먹을년', '미욱한 녀석' 소리를 듣다가도 단 한 번을 '그래두 내 밥 먹고 자란 저것들을 믿지, 남을 어떻게 믿고 집안에 두군 부려' 한마디가 당상에서 떨어지면 개처럼 꼬리가 없어 흔들지 못하는 것만 한이 될 뿐, 이 주인댁을 위해서는 뼈라도 갈아 바치고 싶어하는, 제 자신의 벌이라고는 한 토막 없이 자랐고 굳어 버린 팔월이와 억쇠 아비 천돌이었다. 더욱 저희 자식 억쇠가, 시골 웬만한 도련님 자리보다 더 매낀한 손길로 책장이나 넘기며 자라는 것이 누구에게나 입이 마려워 안 꺼내고는 못 배기는 자랑거리요, 한편으로는 그것이 주인댁에 견딜 수 없이 송구스러웠다. 병이란 돌림이란 것이니 사노라면 어찌나 한번 차례에 올 법하고 걸린다고 다 죽는 것도 아니며 또 약을 쓴다 해서 다 사는 것도 아니다. 의원을 부른다, 화제(和劑)를 낸다, 모두가 있는 사람들 치다꺼리지 무슨 소용인가? 약 쓰는 사람들은 더 잘 앓고 더 잘 죽더라, 다 타고난 명수대로 살다 가는 것을 약 못 쓴다고 탓해 무엇 하랴, 다만 억쇠 어미가 하필 방정맞게 주인댁에 산경(産慶)이 있을 무렵에 눕게 된 것만, 암만해도 저희 내외가 주인댁에 정성이 부족한 표만 같아 얼굴을 들 염치가 없다. 산경이라도 이만저만이 아닐 삼대독자 도련님이 작년 가을에 장가드신 그 새아씨의 첫 산경이었다. 태기 있어 그달부터 태점을 치신다, 절에 수명장수를 빈다, 행여 무슨 동티라도 날까 보아 이 댁 식구들은 초상집에나 제삿집 같은 데는 발그림자도 얼씬하지 않은 지 오래다. 이런 서슬에 오늘일까 내일일까 해서 산파와 의사가 조석으로 드나드는 판인데 억쇠 어미가 누운 것이다. "엥이, 방정맞인 거 어느 때 못 앓어서……." 더운 물을 다시 떠다 아무리 담가 보고 발바닥을 문대 보아도 발은 자꾸만 식어만 간다. 숨도, 인젠 명치끝에서만 발닥거릴 뿐 헤벌룽해진 콧구멍에선 숨기도 제대로 나오지 못한다. "이거, 일나지 않었나 이거, 정신 좀 못 채려?" 병인은 벌써 귀부터 이 세상 것이 아닌 듯했다. "제―길헐! 하필 날이나 받었단 말인가!" 억쇠 아비는 죽는 사람 불쌍한 것이나 저 홀아비 될 걱정보다도 주인댁 귀한 며느님 몸 푸시는데 행여 무슨 부정이나 끼쳐 드릴까 보아 그것부터 겁이 난다. 그러나 사십 평생 약이라고는 피마자 기름 아니면 소금물밖에 먹어 보지 못하였고 이번에도 호렴 녹인 물 두어 모금 마셔 본 것만으로 병세 도지는 대로 몸을 맡겨 버린 팔월이는 다만 '돌림'이거니 할 뿐 무슨 병인지 알아볼 필요 없이, 한 마리의 짐승이나 혹은 생사를 초월한 성인(聖人)처럼 묵묵히 죽음에 들고 말았다. 울음 소리 내서는 안 된다는 노마님의 말씀이 천만지당한 줄 알면서도 억쇠 아비는 입이 걷잡을 수 없이 뒤틀렸다. 꺽꺽 두어 마디 치받히는 올각질 같은 것을 억지로 삼키면서, "이 새끼 잠작구 있어 괘니……." 하고 자식부터 돌려 보았다. 억쇠는 울기는 고사하고 죽은 어미와 이런 꼴의 아비를 발길로 지르기나 할 것처럼 새파랗게 노려보는 눈이었다. 아비는 그저 뒤틀리는 턱주가리까지 눈물이 찔찔 흘렀다. 눈물을 아무리 문대고 들여다보아도 억쇠 어미는 숨이 끊어진 것이 틀리지 않다. 이러고는 앉았을 수는 없다. 감기 든 코처럼 저리고 빽빽한 것을 손바닥으로 으깨 문대기면서 방을 나서는데 대문 밖에서 인력거 오는 소리가 난다. 어제도 안에 다녀간 이 댁 단골 의사 박의사였다. 억쇠 아비는 걸음을 멈추었다. 억쇠 어미 죽은 것을 안에 알리기 전에 박의사가 들어서는 것은 박의사가 억쇠 어미를 살려 놓기 위해 나타난 것 같았다. 얼른 박의사의 앞으로 내달으며 허리를 꾸벅한다. 손만 후들거릴 뿐, 말이 나오지 않는다. 또 입이 뒤틀리며 울음부터 엄살처럼 쏟아진다. "자네 왜 이러는가?" "억쇠 어미요니까……." "참 앓는다구 안에서들 걱정하시드니?" "그게 그만 죽었사와요……." "그래? 그거 안됐군!" "좀 살려 주세요니까……." "거 안됐네그려!" "한 번만 봐주세요니까…… 무슨 짓을 해서라도 그 은혜는 갚죠니까……." "아니 죽었다면서?" "그래두 한 번만 봐주세요니까……." "죽은 것도 살리나? 비키게." 하고 박의사는 억쇠네 방문 앞을 성큼성큼 지나 중문간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억쇠 아비는 우두커니 섰다가 비실비실 안채 부엌 뒤로 오고 말았다. 죽은 계집 초혼이나 부른 듯 끼르륵 소리 나는 목을 늘여, "노마님?" "노마님?" 불렀다. 노마님은 세 마디 안에, "알었다." 대답을 했다. 노마님은 죽은 팔월이를 위해서는 선선히 주머니끈을 끌렀다. "얼른 가 권생원 오시래라. 그리구 그 길루 드퉁전에 가 문을 뚜드려서라두 베 한 필 끊어 갖구 뛰어오너라. 배라먹을년 여태 있다 하필 어느 날 못 뒈져서……." 권생원이란, 이 댁 땅에 도지 없이 삼포(蔘圃)를 내고 이 댁 바깥일은 도맡아 보아주는 체하면서 저는 이 댁에서 이 집을 지을 때도 팔구천 원이나 돈을 대고 매년 변리만 팔구백 원씩 또박또박 따가는 자다. 이 권생원은 십 분 안에 나타났고 다시 삼십 분 안에 들것 든 상두꾼들을 데리고 왔고 그래서 안에서 새아기 울음 소리 떨어지기 전에 팔월이 시체를 담아 내어 이 댁 주인들의 신망을 더 두터이하기에 성공하였다. 수철동 공동묘지는 멀지 않았고 땅도 아직 깊이 얼지는 않았다. 죽어서 드는 집도 살아서 드는 집과 마찬가지였다. 능원(陵園)은 고사하고 평인의 무덤이라도 제격대로 차리자면 칠일장이니 구일장이니도 바쁘다는 것이지만 손익은 상두꾼들이 관도 없는 들것송장 하나쯤 한 짐 장작불이 다 타기 전에 묻어 버리는 것이었다. 하늘도 팔월이에게는 박한 듯 그의 마지막 시선 위에는 함박눈은 아끼었고 싸락눈마저 걷히면서 무심한 별들만 내려다보기 시작했다. 갑자기 묘표(墓標)할 것도 마련하지 못하여 불붙던 장작 한 개비를 박아 표를 하고 들어왔다. 주인댁 솟을대문은 더구나 부정을 꺼리는 때라 굳게 닫혀 있었다. 앞을 섰던 아비는 주춤 물러가고 억쇠가 나서 두어 번 삐걱거려 본다. 아비는 그렇게 하는 것이 잠든 마님들의 어깨나 흔드는 것같이, "이 새끼야, 가만 못 있어?" 하고 윽박는다. 어미가 살았을 때 같으면 벌써 나와 열어 주었을 것이었다. 가만 있으니 발만 더 시리어 억쇠는 견디다 못해 다시 나서 덜컹덜컹 흔들어 댔다. 그제야 노마님의 기침 돋우는 소리가 나왔다. "아비냐?" "네." "왜 요란스럽게 굴어, 이 미욱헌 놈아?" "……" "이것 받어라." 대문을 여는 것이 아니라 문틈으로 지전 한 장을 내어미는 것이었다. "들어올 생각 말구 이 길루 가재울로 내려가거라." "새아씨께서 몸 푸셨사와요?" "부정한 주둥이 다물구 있지 못해?" "……" "내려가서 나릿님께 손주님 보셨다구 순산이라구 여쭤라. 그러구 같은 밤이라두 팔월이년은 자정 전에 갔으니까 날짜가 다르구 시신두 자정 안으로 내갔으니 안심허시라구. 그리구 너이 부자는 삼칠일 지나두룩 올러오지 말구 게 있거라." "네." "냉큼 정거장으로 나가거라." "네, 그럼 마님 다녀옵죠." 밤은 길기도 했다. 정거장에 나와서도 차 시간은 멀었는데 춥기만 하다. 속시원히 울 수가 있기는 날이 밝기나 주인댁에 들어가기보다 차라리 나았다. 아비가 끽끽거리고 울음을 터트리는 바람에 억쇠도 어미 묻을 때 보던 샛별들을 쳐다보며 시린 손등으로 눈물을 문대기곤 했다.   2 차 안은 훈훈했다. 몸이 풀리기가 바쁘게 억쇠는 모든 것이 꿈인가 싶고 졸음부터 쏟아진다. 그러나 내릴 정거장이 고대라 한다. 잠을 쫓느라고 두리번거리다가 억쇠는 건너편 자리에 순사가 앉았고 그 옆에는 손목에 맹꽁이 쇠를 차고 팔죽지는 포승줄에 묶인 죄인이 졸고 있는 것을 보았다. '잡혀가면서도 잠이 오는 걸까?' 처음에는 그런 생각에서 유심히 보았으나 나중에는, '무슨 죄를 진 사람일까?' 하고 엄마 얼굴과 그 죄인의 얼굴이 한데 뒤섞여 돌아가다가 깜빡 졸아 버리곤 하는 머리를 흔들어 다시금 죄인을 살펴본다. 깎은 지가 오래여 수염은 꺼시시하나 이마가 넓고 귓부리가 두툼해 보이는 것이 도련님이 다니는 송도중학의 어느 선생 비슷한 얼굴이요, 양복도 꾸기기는 하였으나 신사복이다. 아무리 보아도 도적질이나 노름꾼 같지는 않다. '무얼 허다 잡힌 사람일까?' 억쇠는 짐작이 서지 않는다. 어쩌다 안에서 보고 버리는 신문에서 황군(皇軍)이 태원(太原)을 점령했으니 상해(上海)서 격전중이니 하는 작년(1937)부터의 지나사변(支那事變)에 관한 기사는 전쟁이라는 흥미에서 유심히 읽어 보곤 하였지만, 이삼 년 전부터 흥남(興南) 노조 적색사건(赤色事件)이니, 명천(明川) 농민 반제투쟁이니 작년까지도 꽤 큰 제목으로 나던 원산철도국 노조 적색사건과 공산주의자협의회사건 같은 것은 다른 기사들을 모조리 읽고 난 다음 심심해지면 다시 집어다 읽어 보는 때가 있기는 했으나 머리에 남길 만치 내용에 끌리었거나 흥미를 느낄 수는 없었다. 더구나 최근 이삼 년간에 조선서 일어난 소작쟁의(小作爭議)는 거의 만여 건이나 되어, 신문에 한두 제목씩 나지 않는 날이 별로 없기 때문에 '소작쟁의'라는 것은 천기예보와 마찬가지로 신문에는 으레 나는 것으로 여기었을 뿐, 이것에는 아무 관심이 없어 온 것이라, 이런 도적도 노름꾼도 아닌 것 같은 죄인에서 억쇠는 그들에게 어울릴 다른 죄목을 연상할 수 없었다. 다만 잡혀가면서도 태평스럽게 졸고 있는 것만 이상스러웠다. '잠이란 저다지 못 견디는 걸까? 사람은 그렇게 잠자코 죽는 걸까?' 억쇠 부자가 이내 토성서 갈아 타고 배천온천서 내리었을 때는 늦은 조반때가 훨씬 지났다. 돈이라고 남은 것은 콩엿 한 반대기를 사니 그만이었다. 이것을 우물거리며 늘어진 이십 리 길을 걷는데 억쇠는 생전 처음인 시골길이 무섭지 않고 재미나기도 했다. 서울서 낳아 열 살까지 동대문 밖 한번 나가 보지 못하고 행랑 뒷 골목에서만 자란 억쇠는, 개성에 와서 비로소 쌀을 나무에서 대지 않는 것을 알았거니와 여기는 개성보다도 맨 논이요 밭들이다. 그리고 서울서는 산 꿩이란 동물원에 가둔 것이나 보았는데 이 밭머리 저 산기슭에서 임자 없이 날아다니는 것이 신기했다. 그러나 길녘과 바로 사람 사는 집 뒤에도 널려 있는 무덤들이 지난 새벽에 엄마를 묻고 오는 억쇠의 눈에는 시골은 온통 이 공동묘지처럼 역시 무서운 편이어서 정이 들 것 같지 않았다. '저렇게 많은 논과 밭들이 다 임자가 있을까?' '왜 사람들은 서울 가서 벌어 먹지 이런 쓸쓸한 시굴서 농사나 짓구 사는 걸까?' 억쇠는 정거장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투정이라도 부리고 싶게 산밑으로만 들어가는 것이 서글퍼졌다. 동네에 다다라 보니 서글픈 생각은 한층 더했다. 맨 오막살이뿐이요, 맨 살이 거칠고 헐벗은 사람뿐이다. 오직 한 채 기와집인 주인댁 뜰안에 들어서니 마루 끝에 나서는 나릿님이 역시 비단옷이요, 기름이 번지르르한 하이칼라 머리였다. 절로 허리가 굽실 구부러졌으나 나릿님께서는 배고프겠구나 말 한마디는 고사하고 그 살이 올라 가늘어진 실눈 한번 아는 체 던져 주지 않는다. 며느리가 아들을 순산하였다는 말에는 고의춤에 꽂았던 손을 뽑으며 입이 히죽이 열리었으나, "그런데 그만 저것 에미가 엊저녁에 죽었사와요." 소리에는 멍―해서 한참 듣기만 하더니, "망헌년 그게 무슨 요망스런 죽엄이람! 그래 산고 있기 전에 내다 치웠단 말이지?" 하고 역시 그것부터 캐어 물었고 눈초리 새포름한 아씨자리는 유리쪽으로 말끔히 내다볼 뿐, 억쇠 아비가 두 번씩이나 굽신거려도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큰댁 며느님의 아들 순산이란 기별도 이 아씨께서는 자기의 어느 멧소(작인에게 빌려 주고 해마다 쌀로 세를 받는 소)가 새끼 낳았다는 기별만 못한 것 같았다. 머슴 있는 방, 웃방이 억쇠 아비가 오면 드는 방이었다. 웃방이라 해도 방은 개성보다 설설 끓었다. 머슴이 조석으로 소 여물을 쑤기 때문에 억쇠는 저희 방 군불 걱정은 없었고 그 대신 저녁마다 안에서 켜는 남포에 기름 넣고 등피 닦는 것이 새 일이 되었다. 이 남포 때문에 억쇠는 생전 처음으로 칭찬도 들어 보았다. 주인 나릿님의 세 번째 소실인 여기 마님은 젊기도 했으려니와 성미가 꽤 까다로워 머슴꾼이나 부엌데기를 시켜 닦은 등피는 한 번도 마음에 든 적이 없는 듯했다. "난 여기 와서 처음으로 잘 닦은 등피에 불을 켜본다. 속이 다 시원허구나! 너 개성 가지 말구 여기 있으면서 등피나 닦어라." 이 젊은 마님은 차츰 억쇠가 좋아지는 다른 까닭도 있었다. 서울서 자란 하인의 자식이라 말씨가 공손해 시골 아이들보다 부릴 맛이 있는 것이었다. 더구나 억쇠 아비는 '마냄'으로 부르는데 억쇠는 '아씨'로 불러 주는 것이 자기의 젊음을 나릿님한테 일깨워 주는 것 같아 속으로 더 탐탁했다. 그리고 나릿님이나 이 아씨나 다 함께 술 생각이 난다든지 고기 생각이 나더라도 인젠 장날 장꾼 편이나 기다리고 있지 않아도 좋았다. 발이 잰 억쇠는 고기나 생선이나 술심부름을 배천읍에 내보내더라도 아침에 보내면 점심참에는 대어 들어왔고, 점심 먹다 생각나 내어보내면 이날 저녁은 틀림없이 먹고 싶은 것을 차려 먹을 수가 있게 되었다. 잔심부름을 시켜 버릇 하니 억쇠는 나릿님이나 아씨방의 남폿불보다 그들의 식성을 돋우는 데 더 요긴한 존재였고 더구나 무시로 달여가고 있는 보약 풍로도 아씨 자신이 지키고 있지 않아도 약을 넘길 걱정이 없어졌다. 이렇게 아씨는 자기에게 달가우니 광목으로 바지저고리 한 벌을 두툼히 해 입히었고 머슴이나 부엌 사람도 저희들의 일이 덜리니 억쇠에게 고맙게 굴었다. 억쇠 자신도 이런 것말고라도 시골이 차츰 좋아졌다. 처음에는 동네 아이들에게 제가 먼저 쭈삣거리었으나 차츰 눈치를 채고 보니 여기 아이들은 도리어 저한테 쭈삣거리는 것이었다. 개울 밑엣집 점둥이도 저희 댁 땅으로 사는 집 아이였고, 동네 초입인 노마란 아이도 길터까지 저희 댁 땅이었다. 그들은 옷주제도 저만 못했고 저를 뒷집 하인의 자식으로 깔보려기는스레 도리어 저를 저희들의 지주댁 마름이나처럼 위하려 들어, 장날 같은 날 읍에서 억쇠가 사는 것이 많으면 그들은 다투어 서로 들어다 주는 것이었다. 아이들만도 아니었다. 어른들도 차츰 억쇠를 요긴하게 알았다. 경답(서울 사람의 땅)이 후하다는 것도 옛말이요, 타작에 북데기 떨이까지 한몫 끼는 것이나, 장리쌀 이자에 사정 없기나, 모두가 지금 지주들과 다를 것이 없는데다가 서울 양반이랍시고 거드름만 부리어, 번쩍하면 말씨를 빼먹지 못했느니 인사성이 없느니 하고 꾸지람만 내리는 통에 작인들은 나릿님이나 아씨 앞에 나서면 먼저 주눅부터 들어 할말도 제대로 못 하는 수가 많다. 그러나 장리쌀 한 말을 먹으려도 지주댁이요, 장날 권생원을 만날 때까지는 단돈 일 원을 돌릴 데도 이 지주댁밖에 없으니 동리 사람들은 이 나릿님과 아씨의 눈치를 살펴야 할 일이 자연 한두 번 아니다. 나릿님이나 아씨로도 그러했다. 고단하면 점심때까지도 자리 속에 누웠는데 눈치없이 창 밑까지 기어들어와 기웃거리며 찾는 데는 질색이다. 작인들이 입에 서투른 서울 말씨를 지어, "나릿님 계셔와요?" "마님 계셔와요?" 하더라도 나릿님이나 아씨께서는 그들에게 대꾸하지 않고 먼소리로 억쇠부터 불러, 억쇠 이외에는 근접을 시키지 않고 억쇠의 전갈을 듣기로 하는 것이다. 이래서 가재울 사람들은 나릿님이나 아씨에게 청들 일이면 먼저 억쇠, 억쇠 하고 억쇠를 찾게 되었다. 억쇠는 가재울에 온 지 며칠 안 되어 얼마 고갯짓을 해도 괜찮을 지체에 올라섰다. 더구나 상전 앞이라면 뼈대 없이 설설 기기만 하여 저까지 절로 그 본을 뜨게 하는 아비와 떨어지는 것으로도 억쇠는 가재울이 개성보다 더 좋아졌다.   3 봄이 되니 시골 사람들은 서울 사람들 몇 배 바빠하는 것 같았다. 억쇠가 알기로는 서울이나 개성서는 겨울 동안 밀린 빨래 때문에나 바빴고 장이나 담고 조기를 들여다 젓이나 담고 굴비나 말리면 고작인데, 시골서는 그 넓은 땅들을 한번 마당 쓸듯 쓸기만 하려도 큰일인 것을 모조리 갈아 헤쳐야 하는 것이요, 돌을 추려 내고 덩어리 흙을 깨야 하는 것이요, 거기다 거름을 져내고 씨를 뿌리고 물길을 에워 내고 개천 옆으로는 둑막이를 하고 그 중에도 못자리 같은 것은 아직 뼈가 저린 물에 들어서서 방바닥 고르듯 공을 들이는 것이다. 들판에서 사내들만 바쁜가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젊은 아낙네들은 밭으로 논으로 더운 점심과 곁두리를 지어 날라야 했고, 등 꼬부라진 할머니들까지 씨앗 바가지를 들고 울 밑과 밭살피로 다니면서 여러 가지 씨를 묻었다. 버들가지를 틀어 헌다하게 피리를 만들어 부는 처녀들도 분꽃씨니 꽈리씨니 조롱박씨니 하면서 울 밑과 장독대로 골독하게 돌아다녔다. 모두들 흙이기만 하면 한뼘 땅도 그냥 두지 않았다. 온 땅에 뿌리고 묻고 하는 씨앗으로 나가는 곡식만 해도 엄청난 것이었다. '저렇게 아까운 것을 내버리듯 했다가 나지나 않는다면 어떡헐 건가?' 억쇠는 걱정스러워 보였으나 시골 사람들은 사람끼리는 못 믿어도 땅에는 아끼지 않고 묻었다. 억쇠 자신도 이해 봄에는 처음으로 흙에 손을 대어 보게 되었다. 서울 창경원(昌慶苑)에 꽃구경 갔던 주인아씨가 화초 여러 가지를 사온 것이다. 안 뜰안에 둥그렇게 하나, 뒤 뜰안 장독대 곁으로 네모지게 하나, 화단을 묻는 것은 아씨가 총찰하는 대로 억쇠가 사흘이나 걸려 만들었다. 감자처럼 생긴 달리아는 움이 벌써 개구리눈처럼 불거진 것이지만 구근(球根) 아닌 다른 꽃씨들은 베개에서 새어 나온 모밀깍지처럼 아무 무게도 습기도 없는 것들이었다. 이런 것에서 싹이 트고 꽃이 피리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땅은 요술쟁이 같았다. 그런 바람에도 날려 버리던 빈 쭉정이 같던 씨앗들을 벌레처럼 움직여 놓은 것이었다. 묻은 지 열흘이 안 되어 덮인 흙은 금이 나고 무엇이 갸웃 하고 내다보듯 군데군데 떠들렸다. 이 위에 하룻밤 가는비가 뿌리더니 어떤 것은 새 주둥이처럼, 어떤 것은 콩짝처럼 흙을 떨고 올려 솟았다. 꽃을 피울 것이나 열매를 맺을 것이나 싹이란 싹은 밭에서고 논에서고 울 밑에서고 이쁜 주둥이들이 솟아 일제히 소곤거리는 것 같았다. 농군들은 그 투박한 손으로도 이 어린 싹들을 쓰다듬기나 하는 것처럼 아끼고 끔찍이 여겼다. 암탉은 어리 속에서 병아리를 품고 있지만 함부로 나다니며 새싹을 쪼아 버리는 수탉 그놈만 단속을 하면 싹트는 시골은 오직 소곤거림과 귀여움뿐 큰소리 한마디 날 리가 없을 것 같았다. 소곤거림과 귀여움은 흙에서 솟는 푸샛것만도 아니었다. 하루 억쇠는 나릿님의 술안주로 물고기 사냥을 나섰다. 점둥이네 반두를 얻어 가지고 앞개울서부터 돌을 들추며 칙바위골로 올라왔다. 물에는 송홧가루가 미숫가루 뜨듯 했다. 가만히 반두를 대고 돌을 들추면 버들치와 날메리 아니면 가재 한두 마리라도 나온다. 아씨께서 봄 가재는 지지면 자기 낭자에 꽂힌 산호 뒤꽂이처럼 붉은 것이 곱거니와 국물이 달아 입맛이 난다 했다. 한참 돌만 들추고 물 속만 들여다보노라면 아직 발도 시리고 허리도 아프다. 앉기 좋은 바위에서 허리를 펴고 발을 말리노라니, '시굴은 참 좋구나!' 생각이 절로 솟는다. 진달래는 한물 이울어 물에도 낙화가 떠내려오는데 양지쪽 산기숲의 나무 끝마다에는, 솟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뿌리는 것처럼 반짝이는 속잎들은 어찌 보면 잔잔한 물결도 같다. 새끼 친 멧새들이 쫑쫑거리고 그 연둣빛 파도를 잠겼다 떴다 하며 난다. 동네에서 꽤 멀리 올라왔다. 점둥이 누이 을순이 또래들이 보았으면 눈이 빨개 덤빌, 물 잘 오르고 굵은 버들이 낫이 있다면 단으로라도 베게 있다. 억쇠는 한 가지 꺾어 비틀었다. 소리는 나나 여기 아이들처럼 가락을 넣어 불 수는 없다. 물에 던져 버리고 건너편 산기숲만 바라보노라니 그 연둣빛 파도 밑으로는 사람도 하나 지나간다. 벌써 누구네인지 점심 고리를 이고 밭으로 가는 아낙네였다. 문득 죽은 엄마 생각이 난다. 엄마며 아버지며 아들이며 흙내 구수한 밭머리에 물러앉아 샘물을 바가지로 떠 나르며 먹는 점심은 천렵처럼 즐거울 것 같았다. '나도 나대로 살어 보았으면! 점둥이네나 장근이네처럼 남의 땅이라도 얻고, 오막살이라도 우리집에서 내 농사를 짓고 살어 보았으면!' 가만히 바위 밑을 내려다보니 배에 자갯빛이 번쩍 하는 무당치리 한 마리가 늘름 나왔다 들어간다. 혼자서는 반두를 대고 한 손으로 움직일 수 없이 큰 돌이다. 가슴이 뚝딱거리나 어쩌는 수 없어 쿵, 쿵, 돌을 굴려만 보는데, 자지러지게 가락을 넣어 부는 피리 소리가 물레방아 쪽에서 내려온다. 억쇠는 길로 뛰어올라왔다. 무당치리보다 더 새까만 눈을 가진 기집애다. 을순이보다는 크긴 하지만 벌써 내외를 하려는 것처럼 길을 한옆으로 빗대며 달아나려 한다. "얘?" 억쇠는 길을 막았다. "너 저기 가 반두 한 번만 잡어 다우?" 얼굴이 빨개지며 말끔히 쳐다만 본다. "그게 뭐냐?" 억쇠는 그 애가 이고 가는 다래끼 속에 무엇이 들었나 궁금했다. "이게 무슨 나물이냐?" "송화두 모르구!" 붉어진 얼굴과는 딴판이게 야무진 목소리다. 입이 동그랗게 열리며 뺨에 볼우물도 동그랗게 패는 아이다. 한 손에는 미나리를 줌이 벌게 뜯어 들었고 한 손에는 그리 굵지 못한 피리채를 꺾어 들었다. "그까짓 거! 저긴 굵은 게 얼마든지 있는데……." "굵기만 험 되지 소리가 나는 것두……." 억쇠는 할말이 막혀 길을 비키었으나 소녀는 넌지시 개울 아래를 내려다본다. "반두 한 번만 잡어 다우?" "……" "큰 무당치리 잡어 주께." 소녀는 길 아래위를 둘러본다. 다시 동그란 눈으로 억쇠를 쳐다보더니 머리에서 다래끼를 내려놓는다. 그리고 개울로 내려와 짚세기를 벗고 물에 들어서 준다. 소녀는 반두를 대어 주고 억쇠는 끙끙거리고 돌부리에 손을 넣어 한머리를 번쩍 들었다 놓았다. 벌컥 내밀리는 흙탕물 속에서 들리는 반두 바닥에는 무당치리만 뛰는 것이 아니라 꺽지도 그만한 놈이 하나 뛰었다. 억쇠는 좋아서 반두를 받아 들고 보니 소녀는 물탕이 튄 치맛자락을 쥐어 짜고 있었다. "많이 젖었니?" 소녀는 대답 대신 얼굴을 저으며 분명히 웃어 주었다. 억쇠가 도리어 우둔이 들려 화끈하는 얼굴을 돌렸다. 그리고 버들가지를 꺾어 그 애 때문에 잡은 고기뿐 아니라 다른 것도 서너 마리 굵은 것으로 골라 끼어 가지고 길로 올라서니 소녀는 벌써 다래끼를 이고 소고삐 서너 기장은 걸어 나갔다. "얘?" 소녀는 돌아다본다. "이거 주께." 소녀는 역시 입엔 웃음을 띠고 다래끼를 인 채 동그란 얼굴을 두어 번 저었다. 그래도 억쇠가 달려오니까 소녀도 뛰어 버린다. 멧새와 달리 쫓아가기만 하면 단숨에 붙들 것이나 억쇠는 그 애가 이쁘면 이쁠수록 수줍어졌다. '저 애가 누굴까?' 소녀는 멀찌감치 가 돌각담 모퉁이에서 돌아다본다. 확실히 생글거리는 그리고 뱅글뱅글 돌아가는 것 같은 동그란 얼굴이다. 땅에서 솟는 꽃순보다도 멧새나 무당치리보다도 더 마음을 끄는 아이다. 이런 소녀는 이내 돌아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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